먼저 결핍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핍이 왜 그토록 위험할까?
사람에게 기본적인 필요가 있다.
수면욕, 식욕, 성욕과 같은 신체적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신체적 필요를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신체적 필요를 무시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신체에 위험 신호가 오기 때문이다.
이 필요는 누구라도 기본적으로 알게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채우지 않으면 심각한 결핍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수 있는 "다른 필요"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체적 필요가 아닌 또 다른 필요, 그 필요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적, 감정적 필요이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 칭찬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 불안과 염려를 떨쳐버리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 등등.
이 부분이 중요하지만 종종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필요인듯 하다.(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런것 같다)
이 필요가 무시되게 되면 역시 결핍으로 다가온다.
나의 아버지, 형님은 감정은 사치라는 말을 하곤 했다.
물론 어려운 경제 환경, 척박한 삶에서 이러한 필요를 고민하기가 결코 쉽지도 않고, 특히 가장이라면 가정의 필요를 앞세우고 살다보니
자신의 필요를 무시하게 되기란 쉬운일 일수도 있겠다.
가족을 돌보는 가장,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 등 다른 가족 성원의 필요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자신의 필요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시 해야하는 구조이다보니 자신의 필요를 지나치거나 무시하기 쉬운 삶의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라 보여진다.
이런면에서 자신의 필요를 본의 아니게 희생한 가족 성원에 대해 우리는 감사함과 동정심을 나타낼 필요도 있겠다.
하지만, 삶의 어떤 부분 혹은 어떤 이유로 인해 감정적 정서적 필요가 결핍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당시에는 감정적 필요가 사치라고 느꼈다고 해도, 상황이 좀 더 나아졌다면 그걸 여전히 사치로 여기면서 결핍된 불쌍한 자신을 결핍속에 내버려둘 이유는 무엇인가?
결핍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결핍의 순서는 이러한 구조로 생기는것 같다.
필요 발생 -> 무시 혹은 억압 -> 충족되지 않는 상황들의 반복 -> 결핍
결핍은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일이 아니다.
결핍이 깊어지면 그림의 꼭두각시처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삶이 온통 이러저리 이끌려 다니게 되는것 같다.
신체적 결핍보다 정서적 결핍의 파장은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예를들어 한 2~3일 잠을 못자더라도 하루를 푹 자주면 그 결핍은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서적 결핍의 해소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이를테면 어릴때 부모로 부터 인정이나 칭찬을 거의 받지 못한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아이는 부모로 부터 "인정욕구" 혹은 "애정욕구"를 채우지 못했다.
채워지지 않은 그 결핍이 큰 구멍이 되고, 삶은 온통 인정을 받기 위해 어리저리 뛰어다니며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살고자 한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내던지고 남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
이렇게 "정서적 욕구"는 결핍되면 삶을 쥐어 이러저리 흔들어버릴 정도로 큰 파장을 미친다는 것을 관찰해보면 알게된다.
결핍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한술로 배부를 수 있었던 필요와는 달리 밥통을 통째로 갖다 주어도 부족하다고 외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비교적 쉽게 채울 수 있었던 필요에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채우기 쉽지 않은 결핍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이 심각한 결핍까지 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1. 신체적 필요 외에 다른 정서적 필요들이 있음을 이해한다
2.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정서적 필요 역시 필수적으로 채울 인간의 기본 욕구임을 인정한다.
3. 필요를 채우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 - 나의 환경, 주변 사람 - 잘 정리하여 욕구를 채우는 일을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
4. 그 필요를 남을 통해 채우는 대신, 스스로 채우는 방법을 배운다.
(물론 내 필요를 기꺼이 채워줄 수 있는 가족, 배우자가 있다면 당연히 감사하 받으면 된다. 하지만 남을 통해 채운다는 표현은
남에게 달라고 보채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에 남의 필요를 기꺼이 채워주길 원하는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매달리게 되면 갈등 관계가 쉽사리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희생"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나라이다.
"희생"이란 고귀하고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핍된 사람에게 "희생"이란 있기 어렵다. 주로 온통 결핍된 사람은 사실 "이기적"에 가깝다.
"희생"을 가리치는 일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 적용되어서 개인적 필요를 돌보는 일이 희생적이지 못한 혹은 이기적인 태도로 보여지는 일은 참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필요를 인정하고, 필요를 채우는 것은 건강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한 일이다.
필요를 채우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면 남도 행복하다.
[출처 : Rockyshore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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