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적인 사람이 위험하다니..
분명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순종적인 사람은 자기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타인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고 따라가는 사람이라
거절 잘 못하고, 자기 방어 잘 못하고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끌려다니면 다녔지 위험하다니?
흔히 하는 말로 "동전의 양면"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사람의 어떤 부분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앞면으로 보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동전 뒷면처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순종적인 사람이 언제 어떻게 동전의 뒷면과 같은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내 주변의 지인과 가족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그들의 심리를 파악해보려 하고, 관련 전문 서적들도 짧지 않은 시간 탐독해 왔다. 그런 관계들이 나를 상당히 힘들게 하기도 했고, 오랜시간 동안 그들에 대해 이해해보고자 많은 생각과 시간을 쏟았다.
순종적인 사람들의 어린 시절부터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순종적인 아이들을 "손아귀에 꽉 쥐고, 손 안에 가두는"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자기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어른들은 "기쁨조"를 상당히 좋아한다.
이들에게 있어 순종적인 어린 아이들은 말 잘듣지, 시키는대로 잘하지 이런 기쁨조가 없다.
이 어른들은 아이가 어떤 잠재력이 있고, 어떤 훌륭한 점이 있고, 아이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즉 아이의 한 인간으로서 성장에 대한 관심 보다는 아이가 자신들의 기쁨을 위해 무엇을 해주느냐에 주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런 가정 환경, 이런 어른들이 가득한 주변 환경에서 "지나치게 순종적인 아이"의 양성은 굉장히 장려될 것이다.
뭐 아직은 어리고, 어릴때 누구라도 인정 받고 칭찬 받고 싶어서 시키는 일 잘하고, 말 잘듣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글쎄 이게 뭐가 문제지?
그렇다. 지금은 동전의 앞면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순종적인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때 동전의 뒷면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삶의 어느 순간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예쁨을 받는 어린아이로 남을지" 아니면 "모두가 다 나를 좋아할 순 없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거스로 나로서 살아갈지"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온다.
하지만, 지나치게 순종적인 사람들 혹은 타인에게 지나치게 맞추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 보다는 타인에게 "버림받거나 거부당하고 싶지 않은 불안" 더 큰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상대의 의견에 따르고, 맞추는 일은 어린 자녀가 부모 슬하에 있을때 양육 과정에서 하는 행동이지 사춘기를 접어서기 시작해서는 부모의 의견에 반박을 하기 시작하는 때가 찾아오면서 일반적으로 이미 10대 중반에 100% 맞추는 일은 끝이 나게 된다. 성인이 되기까지 100% 어른 말이나 소위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순종적인 어린아이"로 남은 것이라고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상대방이 언제나 100% 옳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서는, 혹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 아이가 아니고서는 상대에게 100% 순종한고 맞추고 따른다는 일은 전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 때 하던 일, 어른들이 좋아하고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일을, 그 일을 커서도 하는데,
어른들에게서 주변 사람들로 대상만 바뀌었지 "타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인정 받는 일"의 본질은 같은 방식으로 아직 10살의 순종적인 어린 아이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예쁨, 인정을 받는 일"
이것을 쫒는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글쎄, 타인의 인정이 계속 주어진다면 어느정도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확인을 외부에서 시켜주는 기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엄밀히 따지면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운게 외부의 확인이 없어지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부르기 보다는 불안하지 않은 정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맞을 수도 있겠다.
이런 삶의 방식이 행복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2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1. 행복은 "타인의 인정"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2. 남들이 나에게 원하는 일들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언제나 일치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이 자체가 자신의 필요과 욕구에 반하는 삶이다.
"타인으로 인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는 "더 나은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자신를 잘 알고 실현하고, 자기의 욕구와 필요를 잘 파악하고 채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빈 그릇에 내용물이 꽉차듯 욕구와 필요들이 잘 채워지는 느낌은 "꽉 찬" 만족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분명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날 나도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했다. "아니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네?" 자신을 발견한 기쁜 순간 아닌가?
그 잠재력이 실현 되면서, 현실에서 무언가 성취로 다가올 때 그 성취감은 행복을 주지 않는가?
꼭 커다란 부분이 아니라도 사소한 다른 부분들도 있다.
인정이 아니라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며 공유하는 것도 즐겁다.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음악을 듣는 일, 내가 좋아하는 아지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충전하는 일도 행복에 기여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나만의 18번 음악, 18번 장소, 18번 음식, 특급 취미, 18번 여행지 등등.
나만의 18번이 많을 수록 자기 만족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나도 좋다고 느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린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남들과 똑같은 복제품, 기성품 같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고, 1억명이 있어서 1억명 모두 100%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독특하고 고유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훨씬 단순한 동물, 강아지라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게 같은 견종 - 이를테면 푸들 - 끼리도 다 성격이 다르다.
(애견을 기르는 사람이면 이 부분에 대해 훨씬 더 공감을 할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 아는 것 외에도 때때로 힘들고 지칠때,
자신의 힘들고 지쳐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보상과 휴가를 주어, 어떻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아는 것도 자기 마음을 잘 알고,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을 발견하는 것들은 저절도 거저 된 것들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와 알아 내는 과정의 많은 시행착오, 시간, 집중력이 투자된, 남들에게 투자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투자한 많은 시간과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 칭찬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에 머무르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탐구할 기회와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이해, 자신에 대한 개발, 성장, 자신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마치 개발 도상국과 같아서 발전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오는 사이 이들이 놓친 건 결코 작지 않다.
사실 남들이 좋아하는 일들은 내 개인의 욕구와 필요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당연하게 타인의 욕구와 내 욕구는 같을 수 없는 것이고, 타인의 욕구를 앞세우다보면 당연히 내 것은 뒤로 밀려나는 희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기에 남들의 인정을 받는 행동들이 당시에는 인정을 받아서 기분이 좋지만 실제로는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뚜렷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상대에게 내 마음을 알아주라고 요구하는 상대를 힘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딱히 뭘 해야 좋은지도 모르고, 뭘 해줘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참 힘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자녀를 두게 된다면 자신과 똑같은 길을 반복하게 만듦으로서 자녀의 진정한 행복의 길을 막게 될수도 있다.
이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자녀에게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기쁨조"의 역할을 부여하고 요구하고,
자신도 어른에게 잘 순종하는 착한 아이였으니, 너도 나처럼 그런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반복할 것을 주문할 수도 있다.
사실 엄밀히 심리학적인 용어로 이 상황을 표현하면 "감정적 노예" "감정적 지배" 관계이다.
표면적으로는 부모에게 순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모의 기쁨을 아이는 감정 노동을 하게 되고, 그 노동에서 나와서 자신에게 집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감정적 노예"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어른이 된 그들 - 처음에 순종적인 아이였다.
'PERSONAL > 세상,사람 그리고 나를 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5.결핍의 늪에 빠지지 않기 (0) | 2016.11.09 |
---|---|
004.미움 받을 용기? (0) | 2016.10.16 |
003. 사람간의 안전한 거리 (0) | 2016.10.13 |
002. 나는 왜 작아지는가? (0) | 2016.10.10 |
001. 심리학에 관심을 갖다 (0) | 2016.10.10 |